한산소곡주..

한국의 전통 명주 - 충남 서천 한산 소곡주

도자기를 소개하는 언니 2006. 7. 15. 15:36
첫 번째 잔 입 안에 탁 털어 넣으면 그 향기로운 맛에 반해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없고,두 번째 잔 주욱 들이켜면 어느새 손끝, 발끝이 취해버려 몸을 일으킬 수 없게 만드는 앉은뱅이술. 사람들은 소곡주를 ‘앉은뱅이술’이라 불렀다.

"뭐 딴 게 있어야지유. 그저 술 빚는 사람의 정성이지유. 술 한번 담그믄 밤이고 낮이고 신경이 쓰여서 잠도 편히 못 자유. 혹여 술이 쉬어버리지나 않을까, 혹 부정 타 맛이 없지나 않을까 하고 말이어유.”

소곡주가 폭 익어 가는 술독을 연신 어루만지며 술도가의 며느리 우희열 씨가 말한다. ‘술’이란 놈이 얼마나 신기한지, 아무리 똑같이 담가도 독마다 맛이 틀린 것이 꼭 한배에서 난 자식이라도 얼굴 생김새며 성격이 다 다른 것과 같다는 말도 덧붙인다.

 

우희열 씨가 독에서 방금 떠낸 소곡주 한 잔을 권했다. 잘 익은 벼이삭처럼 노릇한 술은 향기로운 누룩향을 풍겼다. 코끝을 맴도는 누룩향의 단내를 맡으며 한 모금 맛보니 술이라 하기 민망할 정도로 입 안이 달콤하다. 독 안의 술을 맛본다는 핑계로 이리저리 항아리 뚜껑을 열고 한잔 두잔 넙죽 받아 마시다 보니 얼굴이 벌게지며 취기가 오른다. 별로 마신 것 같지도 않은데 몸이 슬쩍 제멋 대로다.

“어때유? 식혜보다 더 달지유? 옛날에 여그 한산은 전라도 사람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갈 때 꼭 들렀다 가는 길목이었지유. 과거 보러 온 양반이 소곡주 맛에 반해 한잔 두잔 기울이다 과거 날짜를 놓쳐버렸다는 야그가 있어유. 한 잔 맛보면 도저히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없고 또 이냥저냥 맛보다 취해버려 일어날 수 없다고 해서 앉은뱅이술이라고도 부르지유.”

우희열 씨는 소곡주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첫 번째가 물이요, 두 번째가 누룩, 세 번째가 술 익는 온도라고 했다. 소곡주에는 찹쌀과 누룩, 향을 위한 약간의 국화잎과 부정을 타지 말라는 의미로 홍고추 서너 개가 들어가는 것이 전부다. 우씨는 한산의 건지산 밑에서 나는 약수로 담가야만 제대로 된 소곡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인근 서천 지역에서도 소곡주를 담가 먹는 사람이 많은데, 그들도 꼭 건지산 물을 가져다가 술을 빚을 정도라고 했다.

소곡주를 빚는 과정은 이렇다. 먼저 쌀을 찐 후에 누룩과 쌀로 밑술을 담그고 3일 정도 발효시킨다. 발효가 되면 밑술에 고두밥(찹쌀)을 비며 덧술을 빚은 후 항아리에 넣고 100일 동안 땅 속에 묻어 발효, 숙성시킨다. 소곡주가 백일주라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백일주는 약주로는 가장 오래 발효시킨 술이다. 발효 기간이 길어질수록 술 빚기가 어렵고 술이 쉬기 쉽다. 반면 백일주는 오래 보관할 수 있고 그 맛도 깊고 은근하다. 소곡주는 18%로 도수가 높은 약주다. 그리고 이 약주를 증류해 매력적인 43%짜리 불소주도 만들어낸다.

소곡주는 지난해 ‘한국전통식품 BEST 5’에서 전통주 부문 1등을 차지했다. 그리고 ‘비공식 집계’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널리 애주가의 사랑을 받는 술이라고도 한다. 백제의 1,500년 전통이 살아 있는, 현존하는 한국 전통주 중 가장 오래된 술이 바로 소곡주다.

▒ Extra Story
소곡주, 한산을 벗어나지 마라
좋은 술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소곡주는 꼭 한산에서 맛보길 바란다. 2만원쯤 하는 됫병술과 간단한 안주거리를 사 들고 찾아갈 만한 곳이 많기 때문이다. 백제 유민들이 최후의 격전을 벌였다는 건지산성에 올라가 한산을 굽어보면서 한잔 할 수도 있고, 건지산 아래 문헌서원을 찾아가 이색의 묘소에서 또 한잔 할 수도 있다. 물론 소곡주 마시기에 가장 좋은 곳은 따로 있다. 바로 금강이 400km의 긴 여정을 마감하는 금강 하구언이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북한군 송광호와 남한군 이병헌이 처음 마주치는 장면을 촬영한 신성리 갈대밭이 바로 이곳에 있다. 가을이 되면 노랗게 꽃을 피우는 갈대밭의 한없는 흔들림을 보며, 날아가는 새들과 바람과, 문득 낮아진 하늘을 보면 마시는 소곡주는 그 어떤 왕후장상이 마시던 술에 비할 수 없다.
▒ How to Drink
한산 사람들은 소곡주 한잔에 미나리파전을 곁들였다. 단맛이 강한 소곡주는 파전 외에 육회,육류와도 잘 어울린다. 가장 맛있게 소곡주를 마시기 위해서는 8℃ 정도로 보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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